11월, 찬바람이 문턱을 넘는다. 계절은 서서히 겨울의 옷을 꺼내 입고, 거리는 낮보다 길어진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하지만 그 어둠을 무채색으로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도시들은 하나둘씩 ‘빛’이라는 언어로 겨울을 말하기 시작한다. 빛은 장식이 아니라, 계절과 사람, 도시를 잇는 매개체가 된다.빛축제가 전국을 채우기 시작하는 건 이달 말부터다. 화려함보다 따뜻함을, 일회성보다 기억을 중시하는 흐름이 짙어졌다. 그 중심엔 각 도시가 품은 고유한 이야기들이 있다.
전남 함평은 가을 대표 축제인 국향대전의 조형물을 그대로 품은 채 ‘2025 함평겨울빛축제’를 연다. 꽃 조형물은 낮과 밤을 가로지르며 ‘겨울 속 테마가든’으로 재탄생한다. 여기에 미디어아트, 버스킹, 크리스마스 체험 프로그램이 더해져 군 단위 지역에서도 풍성한 겨울 콘텐츠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강원 동해시 묵호항의 밤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조용히 깊다. ‘묵호 라면야행’은 라면 한 그릇을 매개로 어둠 속 바다를 경험하게 한다. 스카이밸리에서 마주하는 밤바다, 바닷바람, 그 자리에서 끓여 먹는 뜨거운 국물. 특별한 연출 없이도 도시의 정체성과 감성이 오롯이 드러난다.
서울 청계천은 매년 연말이 되면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빛으로 부른다. 올해 ‘2025 겨울, 청계천의 빛’은 케이크 트리와 미니기차, 캔디 캐슬 등 가족 친화 콘텐츠에 영상편지, 숏폼 공모전 등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까지 더해졌다. 청계천은 더 이상 감상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시민이 직접 축제를 만들고, 축제를 통해 도시와 소통하는 장으로 확장됐다.
이처럼 각기 다른 빛의 방식은 도시들이 겨울을 마주하는 태도를 말해준다. 겨울은 관광 비수기다.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지역은 야간 체류를 유도하고, 도시는 밤의 얼굴을 다시 그린다. 축제의 무대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문화적 광장이 된다.그리고 그 질문이 남는다. 겨울에도 도시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도시는 빛을 꺼내 들었다. 누군가에겐 가족과의 따뜻한 기억, 누군가에겐 지친 연말의 위로, 또 누군가에겐 도시를 다시 보는 경험이 된다.11월의 마지막 주, 전국 도시들이 하나씩 불을 밝힌다. 따뜻한 온기의 불빛들이 어둠을 뚫고 퍼져나간다. 그 아래서, 각자의 겨울이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다.컬처GB신문 발행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