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가족과 따뜻한 밥상 앞에서, 누군가는 조용한 방 안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새해를 맞는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해가 가장 먼저 닿는 곳을 향해 먼 길을 나선다. 여수 돌산의 끝자락, 향일암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이는 곳이다.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은 쉽지 않다. 겨울 바닷바람은 매섭고, 가파른 계단은 숨을 고르게 만든다. 그러나 그 길을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말은 없지만, 모두 저마다의 소원을 품고 있다. 건강, 가족, 삶의 안녕, 혹은 다시 시작하고 싶은 어떤 다짐. 향일암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곧 자신을 향한 질문이 된다.
동쪽 바다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해는 늘 같아 보이지만, 그 순간을 바라보는 마음은 해마다 다르다. 어둠 속에서 붉은빛이 퍼지기 시작하면, 바닷물 위로 반사된 햇살이 길처럼 이어진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숨을 멈춘다. 누구 하나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마음이 된다. ‘올해만큼은 잘살아 보자’라는 조용한 다짐이다.
향일암의 이름 그대로, 이곳은 해를 향해 기도하는 암자다. 그러나 그 기도는 특정 종교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염원은 훨씬 인간적이고 보편적이다. 넘어졌던 시간에 대한 위로, 버텨온 날들에 대한 격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작은 용기. 새해 첫 해를 바라보는 순간,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진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면, 박수 소리 대신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기적처럼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향일암에서의 새해는 거창한 결심보다 조용한 각오를 남긴다. 잘 살겠다는 다짐,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견디겠다는 마음.새해는 늘 같은 방식으로 시작되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맞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여수 향일암에서 맞는 새해는 해를 보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바다와 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겹치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새해의 문턱에 서게 된다.
해는 또다시 떠올랐고, 시간은 다시 흐른다. 그러나 향일암에서 바라본 그 첫해의 빛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새해를 살아갈 힘은, 그렇게 조용히 시작되기 때문이다.컬처GB신문 발행인 조상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