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75년을 살았다.돌이켜보면, 이 땅은 늘 쉽지 않았다. 오천 년의 역사 속에서 중국이 혼란스러우면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고, 중국이 안정되면 우리는 늘 고달팠다. 그 굴곡의 끝자락에서도 고단함은 좀처럼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전쟁의 흔적 위에서 자랐고, 가난을 일상처럼 받아들이며 청년기를 보냈다. 배고픔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공기였고,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미래라는 말은 언제나 희미했다.그 시절의 천국은 늘 ‘다음’에 있었다.전쟁이 끝나면, 먹고살 만해지면, 아이들이 크면, 나라가 부강해지면—천국은 항상 도착 예정지였다. 지금은 견뎌야 할 구간이고, 행복은 미뤄두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졌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고, 내일을 그리는 일은 사치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천국을 기다리느라,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지나쳐 온 것은 아닐까. 아침마다 무사히 눈을 뜨는 일, 거리의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병원과 버스와 시장이 멈추지 않는 하루, 전쟁 걱정 없이 손주의 손을 잡고 산책할 수 있는 저녁. 과거의 나에게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장면들이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반복되고 있다.대한민국은 여전히 부족한 나라다.갈등은 많고, 속도는 빠르며, 경쟁은 피곤하다. 젊은 세대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온 과정은 기적에 가깝다. 폐허 위에서 시작해 굶주림을 벗어나고, 교육과 의료, 교통과 기술을 일상으로 만든 시간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누군가는 젊음을 바쳤고, 누군가는 오늘을 희생했다.그래서 요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천국이 따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일상이 이미 누군가가 평생을 바쳐 만들고 지켜온 ‘현실의 천국’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여주었다면, 그는 분명 고개를 저으며 믿지 못했을 것이다.
주검을 목전에 둔 자가 꿈꾸는 완벽한 천국은 있을지 모르나, 미완성의 인간에게 완벽한 천국은 없다.불편은 남아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처럼 쌓여 있다. 그러나 천국이란 완벽함이 아니라,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 위에 세워지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실제로 증명해 온 시간—그 자체가 이 나라의 가장 큰 자산이다.75년을 살고 보니 이렇게 느껴진다.천국은 멀리 있는 약속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지켜내야 할 현재다. 불평보다 감사가 필요하고, 불만보다 책임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땅이 여기까지 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인내의 결과다.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나라에 산다.완벽해서가 아니라,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만 원대의 평범한 식탁에서 식사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옛날의 정승들도 이것보다 잘 먹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천국이 따로 없어졌다는 말은, 어쩌면 이제야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고백일지도 모른다.컬처GB신문 발행인 조상배